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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태와 부여씨 백제 왕조

죽엽 단상

by 죽엽 2023. 12. 17. 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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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Goth족과 Gutae

 

얼마 전 스칸디나비아, 스웨덴의 Skane county에 있는 Goth 족의 고향에 대해서 알아 보았다. 그리고 그들의 Goth이름이 조상들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는 위키피디아 자료를 보고 필자는 고씨의 선조들, 예를 들어 북부여의 고두막한, 고구려의 고주몽 등을 언급한 바 있다.

 

그런데 이 Goth이름과 같은 의미로, Geat, Gotar  등등이 언급된다고 했다. (아래 자료 참조)  

 

https://lostcorea.tistory.com/1814

 

12환국의 하나인 구다천국은 북유럽에 있었다

부제 : 파내류산은 북유럽에 있었다. I. 서 론 최근 환단고기의 내용을 살펴 보면서 12환국의 위치 및 삼한, 삼조선의 위치를 검토하는 작업 중에 구다천국에 대해 확신을 얻은 것으로 판된되어

lostcorea.tistory.com

 

 

윗글의 일부를 다시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 Name of the Goth

 

Jordanes writes in Getica that the ancestor of the Goths was named Gapt (Proto-Germanic: *Gaut).[15][8] In Scandinavia, Gaut was considered to be a manifestation of the Germanic god Odin,[29] and the Geats derived their ethnonym from this name. The Geats and royal Lombards and Anglo-Saxons claimed descent from Gaut.[30] Wolfram notes that the Gothic name may thus mean "sons of Gaut".[21]

Geats, 롬바르드 왕족, 그리고 앵글로삭슨이 Gaut의 후손이라 주장한단다. 그리고 고트족 이름은 Gaut의 아들들이라는 의미일 수 있다 한다.

롬바르디왕족은 필자는 진흥왕세력이라 했는데, 이들이 흉노족의 후손이라 주장되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흉노의 고향인 약수가 이곳 스칸디나비아에 있다면 고트족이 바로 흉노족이 되기 때문이다.

 

Regardless of the meaning of the Gothic name, Herwig Wolfram writes that it is certain that "the tribal name Goths means the same as Gauts". According to Wolfram, this is of bigger importance than its actual meaning.[21] Elias Wessén writes that it is impossible to separate the words Gutar, Götar, Goths, *Gutans and Gauti from each other; they all mean the same.[31][3..........

 

Gutar, Gotar, Goths, Gutans, Gauti 모두 같은 것이라 한다. 

 

In his work Geography, the 2nd-century geographer Ptolemy mentions the Gutones/Gythones as one of the peoples of Sarmatia.[52][53][54] He also mentions the Gutae/Gautae/Goutai of southern Scandia.[55][12][54] The latter are variants of the name of the Geats and closely related to the name of the Goths.[12]

Gutones, Gythones, Gutae, Gautae, Goutai 모두 Goths와 관련된 이름이라 한다. Ptolemy는 Sarmatia 사람들의 일부인 Gutones, Gythones도 Goths족 일원이라 언급했다 

..........

 

The name Goths was sometimes applied also to several non-Gothic peoples, including Burgundians, Vandals, Gepids, Rugii, Sciri and even the non-Germanic Alans. Despite the scarce attestation of their languages, these peoples, with the exception of the Alans, are often referred to as East Germanic peoples. Herwig Wolfram has instead proposed that all these peoples still be referred to as Gothic peoples.[64]

Goths족 이름은 때로는 다른 비 고트족 부족에게도 적용되는데,부르군디언, 반달, 게피드, 루지, 스키리, 알란족 등이 포함된다. 

필자는 이들이 훈족인 광개토태왕의 서진에 동참한 부족들로 판단한다. 

 

From the late 4th century, the region of Dacia in the Balkans came to be referred to as Gothia, as this region had fallen under the control of Goths.[2]

 

4세기부터, 발칸의 다키아지역이 Gothia로 언급되는데, 이 지역은 Goths족의 지배하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

 

In the 6th century, Procopius and Jordanes mention the Gautoi and Gauthigoths of Scandia. These were probably Geats.[15][2] Jordanes also writes that the area settled by the Goths under king Berig was still called Gothiscandza.[66] This name means "Gothic-Scandia" or "Gothic coast".[2]

6세기에 Procopius와 Jordanes가 언급한 Scandia의 Gautoi, Gauthigoths들도 아마도 Geats일 것이다. Jordanes는 Berig왕의 고트족이 정착한 지역이 아직도 Gothiscandza라 불리는데, 이 이름은 고트족의 스칸디아 또는 고트족의 해안을 의미한다. 

 

In the 8th century, the area of Septimania in the Carolingian Empire was known as Gotia. This area had earlier been under the control of Visigoths.

8세기에, 카롤링거 제국의 Septimania지역은 Gotia로 알려졌는데, 이 지역은 일찍부터 서고트족의 지배하에 있었다. 

From the 8th to 10th century, a people called the Gothogreeks are mentioned as living in the western coast of Asia Minor.

8세기에서 10세기까지, Gothogreeks라 불리는 부족이 소아시아 서안에 살았던 것으로 말해진다. 

(source: Name of the Goth, Wikipedia, 인용출처 :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lainfs), 카테고리, Sweden)

 

 

Origin of Gotaland in Sweden (source : Wikipedia)

 

필자는 위의 인용 글 중에서 특히 아래 귀절을 최근 다시 주목하게 되었다. 

 

"In his work Geography, the 2nd-century geographer Ptolemy mentions the Gutones/Gythones as one of the peoples of Sarmatia.[52][53][54] He also mentions the Gutae/Gautae/Goutai of southern Scandia.[55][12][54] The latter are variants of the name of the Geats and closely related to the name of the Goths.[12] "

 

2세기의 지리학자 프톨레미는 Gutae, Gautae, Goutai 등 남부 Scania의 이름도 모두 Goths와 관련된 이름이라 한다. 필자가 여기서 특히 주목을 하는 이름은 Gutae, Goutai이다. 글자 그대로 발음하면 '구태'이다. 

 

2. 구태, 우태, 위구태와 부여

 

우리는 백제의 건국그룹인 소서노, 비류, 온조 등을 언급할 때, 비류와 온조는 고구려 고주몽의 친아들이 아니고, 소서노가 고주몽을 만나기전에 결혼한 구태, 또는 우태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라는 주장을 중국 사서, 북사와 수서가 말한다 들었다. (아래 자료 참조)

수서와 북사에서는 구태가 동명의 후손이라 했으며, 대방의 옛땅에 나라를 세웠다 했다. 반면, 김부식은 구태와 비류, 온조의 관계를 알 수 없다고 했다.  국내 일부 학자는 구태와 우태가 동일인이며, 소서노의 전 남편이라 주장한다. 

 

 

"구태왕은 백제의 시조이다. 중국의 사서 북사(北史)와 수서(隋書)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동명의 후손에 구태(仇台)라는 이가 있었는데 매우 어질고 신실했으며, 처음으로 대방(帶方)의 옛 땅에 나라를 세웠다. 한의 요동태수 공손도가 자기 딸을 그의 처로 삼아주었다. 그 뒤 마침내 동이 가운데 강국이 되었다

 

구태에 대해서 삼국사기의 편찬자 김부식은 구태와 비류온조 형제가 어떤 관계인지 알 수 없다고 하였고, ...........

 한편, 비류백제설을 주장한 재야사학자 김성호는 구태가 백제 온조왕의 어머니인 소서노의 전 남편 우태라고 주장한다. 이 역시 소서노의 전 남편인 우태와 구태의 발음이 비슷한 것에 착안한 주장이다."

(자료 : 구태왕, 위키백과, 인용출처 : 필자의 티스토리블로그 (lainfos), 카테고리, 백제)

 

 

우태에 대해서는 아래 위키자료에서 부여왕 해부루의 서손이라 보다 구체적으로 언급된다. 소서노와 결혼하여 비류와 온조를 낳았다 언급한다. 특히 갈사부여가 망하고  갈사왕의 손자 도두에게 고구려 태조왕이 우태라는 벼슬을 주었다 하여, 우태가 관직이름이란 것을 말하고 있다. 

 

"우태(優台)는 백제 건국신화에 나오는 인물이다. 부여의 왕인 해부루의 서손이다. 졸본부여 사람인 연타발의 딸 소서노와 결혼하여 비류와 온조왕을 낳았다고 한다.

개요[편집]

백제의 건국시조인 비류(沸流)와 온조왕(溫祚) 형제의 아버지이다.

비류 백제 신화에 따르면, 북부여의 왕인 해부루(解扶婁)의 서손(庶孫)으로, 동명성왕의 먼 친척이다. 졸본(卒本)사람 연타발(延陁勃)의 딸 소서노(召西奴)와 결혼하여 비류·온조 형제를 얻었다고 한다.

반대로, 온조백제 신화에 따르면 , 비류와 온조를 고구려의 시조 주몽(朱蒙)의 아들로 전하고 있다.

..........

주서》·《수서》 등에 보이는 백제시조 구태(仇台)를 이 우태와 동일 인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갈사부여가 망하고, 갈사왕의 손자 도두(都頭)가 고구려 태조대왕에 귀부하고 우대(于臺 혹은 優臺, 우태(于台)라고도 함)라는 벼슬을 받았는데, 정황적으로 우태(優台)와 동일인으로 파악하기도 한다........

(자료 : 우태, 위키백과, 인용출처:필자의 티스토리 블로그(lainfos), 카테고리, 백제)

 

그런데, 부여의 왕의 이름이 위구태라 하는 아래 자료는 또 다른 해석을 가능케 한다. 즉 우태와 구태, 위구태 모두 연관된 것이 아닌가 한다. 120년, 122년, 2세기 후엽에 등장하는 위구태 이름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이름이라기 보다 왕이나 태자 관련 직위와 관련된 것이라 본다. 2세기 후엽 부여왕이 요동의 군벌 공손탁의 조카딸과 결혼한 것을 보면, 상기 구태가 공손도의 딸과 결혼했다는 것을 고려할 때, 부여는 지속적으로 요동지역 세력 공손씨와 연합한 것을 말해 준다. 

 

"위구태왕(尉仇台王, 생몰년 미상)은 부여의 왕으로 이름은 위구태(尉仇台)이다. 백제 건국 시조로 전하는 구태(仇台)와 동일한 행보를 보이고, 음운적으로 비슷한 우태(優台)와 관련성이 있을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1]

 

즉위 이전[편집]

 

위구태의 선대는 알 수 없으며, 생몰년 또한 알 수 없다. 120년에 부여왕의 태자가 후한에 사신으로 왔는데, 이 태자의 이름이 위구태이다. 위구태는 후한 안제로부터 인수(印綬)와 금태(金綵)를 받고 돌아갔다. 122년에는 고구려·마한·예맥의 군사가 현도군에 쳐들어 오자, 부여에서 위구태를 보내 구원하도록 하였다. 이 이후로 오랫동안 위구태는 기록에 나타나지 않으며, 167년에 부여왕의 이름이 부태(夫台)였던 것으로 보아 원래 왕위 계승권에 가까웠으나 모종의 이유로 즉위가 늦춰진 것으로 보인다. 위구태는 구태와 닮았기 때문에 닮았다는 의미인 위(慰, 位와 통하는 것으로 봄)를 붙여 이름을 위구태라 지은 후손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2]

 

즉위 이후[편집]

 

2세기 후엽에 즉위한다. 후한 말기 요동의 군벌 공손탁이 선비 및 고구려 등의 이민족과 대립하자 부여는 공손탁의 세력과 유대하였다. 공손탁은 부여의 왕 위구태에게 종녀(宗女 : 조카딸)을 시집보내 혼인 동맹을 맺었다. 이후 위구태가 죽자 아들 간위거가 뒤를 이었다.[3]

 

백제의 시조[편집]

 이 부분의 본문은 구태입니다.

주서[4]》 및 《북사[5]》《수서[6]》《책부원구(冊府元龜)》〈백제전〉은 백제의 시조를 구태(仇台)라 기록하고 있다. 구태는 위구태와 흡사한 이름이기 때문에 위구태와 관련이 있다고 보기도 한다.[7] .....

(자료 : 위구태왕(부여), 위키백과, 인용출처: )

 

 

3. 구태와 Gutae의 연관 가능성

 

구태와 고트족의 이름인 Gutae, Goutai와 연관성이 있을 수 있다고 다음과 같은 5가지 연유에서 판단한다.

 

첫째, 우리는 위의 자료에서 구태와 백제의 깊은 연관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중국의 북사와 수서에 "동명의 후손에 구태(仇台)라는 이가 있었는데 매우 어질고 신실했으며, 처음으로 대방(帶方)의 옛 땅에 나라를 세웠다. ' 했기 때문이다.

 

지난 환단고기의 내용 공부에 있어서도 동명은 북부여의 고두막한 단군으로 필자는 이들이 북유럽에 있었다고 추정했다.  (아래 자료 참조)

https://paulcgpark.tistory.com/88

 

비서갑과 하백

최근 몇달동안 환단고기 내용을 보느라 기존의 연구하던 주제가 밀리기도 했다. 이제 연말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나머지 미완성의 주제들을 마무리하고 올해룰 마무리 하고자 한다. 환단고기

paulcgpark.tistory.com

 

즉 구태는 Gutae라는 Goth족 지역인물이란 의미가 아닐까 한다.  환단고기의 마한세가, 번한세가에서 보듯이 지역이름을 딴 단군이름이 있는 것을 고려하면, Goth(Gutae, Goutai)지역의 출신으로 이름을 Gutae(구태)라 한 왕이었는지도 모른다. 

 

둘째는 소서노와 백제의 깊은 연관성 때문이다. 소서노는 홀본부여의 연타발의 딸이라 했다. 즉 홀본 부여 사람이다. 그러나 소서노는 홀본부여의 고주몽을 떠나, 아들 온조 비류와 함께 남하하여 백제를 세우는데 기여하였다. 온조는 대방지역으로 가서 백제의 전신인 십제라는 나라를 세웠으며, 비류는 더욱 이동하여 비류국을 세웠다. 그런데 비류가 세운 비류국을 필자는 발칸반도로 추정했다. (아래 자료 참조). 즉 Gutae지역인 북유럽에서 남으로 내려와 백제를 세운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구태는 Gutae와 연관 될 수 있다. 

 

https://lainfos.tistory.com/441

 

비류가 세운 미추홀의 비류국은 어디인가?

I. 머리말 백제의 비류는 동생 온조와 달리 주변의 건의에도 불구하고 남으로 더 내려가 바닷가 미추홀에서 나라를 세웠다 하였다. 그러나 습하고 짠 물 때문에 온조가 십제 나라를 세운 지역을

lainfos.tistory.com

 

셋째는 백제 부여씨와 동명성왕의 연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백제는 왕들이 재위에 오르면 동명성왕에게 제사를 지내고, 부여씨를 왕씨 성으로 하였다. 즉 고구려 보다 더 부여를 계승한 것을 나타내고 있다. 이는 상기 자료에서 보았듯이, 동명성왕의 후손인 구태의 후손이라는 것(중국 사서 북사, 수서 자료), 그리고  우태가  부여왕 해부루의 서손으로 동명성왕의 먼 친척이라는 것을 고려할 때, 더 이해가 간다. 필자는 동명성왕의 북부여를 북유럽으로 추정했다.(아래 자료 참조)  따라서 구태와 Gutae는 연관된다고 본다. 

 

https://lainfos.tistory.com/419

 

북부여를 계승한 고주몽이 고구려를 개국한 홀본지역은 어디인가?

부제 : 송양의 비류국과 비류수는 어디에 있었나? I. 머리말 필자는 송양의 비류국이 프랑스의 Vienne지방이 아닌가 했다. 그런데, 아래 청회수님의 비디오(7분 06초 화면)에서 삼국사기에 송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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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Goth족의 고향인 스웨덴의 Skane county에서 홀본 (Horby), 홀본천(Horbyan river), 하백(Klar river), 구다천 (Gota river) 등을  찾았기 때문이다. (아래 자료 참조)

 

 

https://lostcorea.tistory.com/1832

 

홀본부여와 송양의 비류국은 어디 있었는가?

I. 머리말 필자는 송양의 비류국이 프랑스의 Vienne지방이 아닌가 했다. 그런데, 아래 청회수님의 비디오(7분 06초 화면)에서 삼국사기에 송양의 비류국이 바다 한쪽에 있었다고 말했다 한다.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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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부여와 읍루의 북쪽에 약수가 있다 했는데, 필자는 스웨덴 Skane County 븍쪽에서 Dalalven 강이라는 약수를 찾았기 때문이다. (아래 자료 참조)

 

https://lostcorea.tistory.com/1813

 

약수(弱水)는 북유럽에 있었다

I. 머리말 지난 번 글에서 약수가 아시아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지리적 요건을 근거로 추정했다. 이번 글에서는 그러면 실제 약수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해 실질적으로 접근해 보고자 한다.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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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맺음말

 

이상의 연유로 인하여 구태와 Gutae가 연관된다 추정한다.  부여의 위구태는 왕이나 태자 등이 가질 수 있는 관직으로 보이는데, 로마사의 Augustus라는 직을 말하지 않나 생각된다. Augustus라는 직위는 옥타비아누스가 처음으로 가진 직함이다. 이후 로마사에서 직함으로 불려졌다. 이에 대해서는 또 하나의 연구가 되어야 하므로 다음으로 미루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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