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위 14년 갑진년(403년?)에 왜가 국법을 어기고 대방계(帶方界)에 침입하니 태왕은 병사를 인솔하고 석성도(石城島)에서 배를 띄워 빠르게 바다를 건너서 대방에 도착하니 왜는 도망을 치는데 구만성(句滿城)까지 뒤를 쫓아 서로 마주치니 왕은 겁을 주고 요새에 몰아 넣고 짓밟아 협살하니 왜는 궤멸, 패하였고 참살한 자는 헤아릴 수 없었다."
(자료 : 태왕의 꿈, 김덕중, 덕산서원)
왜가 대방지역에 침범하니 광개토태왕은 석성도에서 배를 뛰워 바다를 건너 대방에 도착하니 왜가 도망치는데 구만성까지 쫓아가 참살했다는 것이다. 이에는 두가지가 눈에 띄는 언급이다. 첫째 광개토태왕의 고구려가 석성도에서 배를 띄워 대방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둘째 대방에 왜가 침범하였는데 왜는 도망가 구만성으로 도망갔다는 것이다. 왜가 바다를 건너 도망갔다는 말이 없는 것을 보니 구만성은 대방에서 육지로 가는 지역의 성인 것 같다.
이러한 언급은 대방과 왜의 위치, 그리고 궁긍적으로 고구려의 위치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한다. 우선 기존의 사학자들이 주장하는 대방의 위치를 살펴 보자. 아래 그림은 낙랑의 위치에 대한 견해를 모은 것인데, 대방은 낙랑의 좌측에 있는 것으로 사서들은 말을 하니 이 지도를 가지고 논해도 될 것 같다.
낙랑의 위치에 대한 여러 견해 (자료 : 인터넷)
이병도의 한반도 주장을 제외하고, 그리고 요하의 동쪽을 주장하는 신채호의 주장을 제외하고, 모두 현재의 중공땅에서 요하의 좌측 (요서)에 있는 것으로 언급들을 한다. 대방은 낙랑의 좌측이니 이 지역의 좌측을 고려하면 될 것이다.
첫째 의문점은 왜가 이곳까지 침범한 것이냐는 것이다. 분명 광개토태왕의 비문에 대방지역까지 왜가 침입했다 하였다.
왜의 위치에 관한 아래 내용을 보면 왜는 대방의 동남 대해에 살고 있다 했다.
왜인(倭人)(주 001)은 대방군(帶方[郡]) (주 002)동남쪽의 대해(大海) 중에 살고 있는데, (주 003)산이 많은 섬에 의지하여 나라와 마을[國邑]을 이루었다. (주 004)이전에는 100여 나라였는데, 한대(漢代)에 [이들 중에서 한의] 조정에 알현(朝見)(주 005)하는 나라가 있었고, 지금은(주 006)사역(使譯)(주 007)이 통하는 곳이 30개 나라이다.(주 008)
(자료 : 삼국지 위지 오환선비동이 중 왜, 동북아역사넷)
각주 001)
倭:唐代(618~907) 이전에 중국인이 일본인이나 그 국가를 일컬은 호칭이다. 『漢書』(권28下 「地理志下」 〈燕地條〉:1658~1659)에는 “樂浪海中有倭人, 分爲百餘國, 以歲時來獻見云.”이라 기재되어 있고, 이 기사에 唐의 顔師古는 “『魏略』云,倭在帶方東南大海中, 依山島爲國, 度海千里, 復有國, 皆倭種.”이라고 注記하였다. 『後漢書』에서는 “倭在韓東南大海中, 依山嶋爲居, 凡百餘國. 自武帝滅朝鮮, 使驛通於漢者三十許國”이라고 하였다.
주해로 된 내용을 보면, 한서 에는樂浪海中有倭人, 당의 안사고는 위략에서倭在帶方東南大海中, 그리고 후한서에서는倭在韓東南大海中이라 하였다.
이러한 내용을 고려할 때, 낙랑과 대방이 상기 지도처럼 중공의 발해만 지역이라 한다면, 이의 동남쪽 대해는 한반도 서해가 된다. 이 지역에 왜가 있었는가? 그리고 이런 위치는 한(韓)의 동남쪽 대해에 있다는 후한서의 말과도 일치하지 않는다. 더구나 낙랑해 가운데 왜인이 있다 했다. 그러면 낙랑이 있다하는 발해만 근처에 낙랑해가 있고 여기에 왜가 있다는 말이 된다. 이는 국내 사학자들이 말하는 왜의 위치인가? 따라서 이들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상기 고서 내용의 위치에 의하면 낙랑과 대방은 동아시아에 없었다는 말이 된다. 지형적으로 낙랑과 대방이 중공 남부에 있지 않는 한 말이다.
고구려는 미천왕 시기 313년에 낙랑을 그리고 314년에 대방을 축출한다. (아래 삼국사기 자료 참조) 그런데 그전 311년 서안평을 점령한다. 서안평을 점령하니 낙랑군과 대방군이 중국 본토와 연락이 끊겨 이후 2-3년후에 각각 고구려에 의해 점령당한다. 즉 서안평은 매우 중요한 지리적 요충지인 셈이다.
위에서 살펴 본 낙랑군과 대방군의 고구려 점령을 볼 때, 낙랑과 대방은 인접하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서안평의 우측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고구려가 중국과 압록수(요수)를 놓고 대치하는 경우를 고려할 때, 낙랑군과 대방군은 요수의 하류 근처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러한 정황을 고려할 때, 상기 지도의 낙랑과 대방 위치는 왜의 위치와 관련하여 전혀 설득력이 없다.
또한 왜와 중국 (위나라)의 아래 교류 내용을 볼 때, 왜 사신은 대방군을 통해 천자에 전달된다. 즉 대방군이 바다에 접한 곳이라 여기를 통해 왜가 중국을 접하는 것이다. 동아시아의 중공땅이 중국이라면, 왜는 중공땅의 동지나해 어느 연안이라도 접근할 수 있다. 즉 굳이 대방군을 통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는 현재 동아시아에 대방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며, 또한 중국은 남쪽 바다가 대방에 막혀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런 지형은 동아시아에 결단코 없다.
[위(魏)명제(明帝)] 경초(景初) 2년(238) [주] 6월에, 왜(倭)의 여왕이 대부(大夫) 난승미(難升米) [주] 등으로 하여금 [대방]군에 이르게 하여, 천자(天子)에게 나아가서 조헌(朝獻)하기를 요청하므로, [대방군] 태수(太守) [주] 인 유하(劉夏) [주] 가 [관]리(官吏)를 시켜서 [왜의 사절을] 전송(傳送)하게 하여 경도(京都)에 이르게 하였다.
이외에 온조 백제의 건국지가 대방의 땅이므로 오른쪽에 있는 낙랑군의 공격이 있었다는 백제 건국시기의 기록, 신라 진흥왕이 낙랑국왕이라는 칭호를 진나라에서 받았다는 기록을 고려할 때, 상기 지도의 낙랑, 대방의 위치로는 이러한 상황이 설명이 되지 않는다.
또한 백제 책계왕은 사돈의 나라인 대방군이 고구려의 공격을 당하자 이에 대항하여 전쟁을 했다 한다. 대방군이 백제에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결혼동맹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즉 백제와 대방군은 근접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상기 지도의 낙랑, 대방의 위치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대방에서 대마국 왜의 위치는 아래 자료에서 보다 자세히 서술된다. 즉 대방에서 해안을 따라 가면 한(韓)이 있고 또 다시 남쪽으로 동쪽으로 나가면 구야한국의 북안에 도착한다. 이 거리가 7천리이다. 여기서 바다를 건너 1천여리를 가면 대마국이 있다는 것이다.
"[대방]군(帶方郡)에서 왜(倭)까지는, 해안을 따라 물길로 가서 한(韓)을 거쳐 때로는 남쪽으로 때로는 동쪽으로 나아가면 그 북쪽 대안[北岸] 인 구야한국(狗邪韓國)에 도착하는데, [거리가] 7천여 리(里)이며, 처음으로 바다 하나를 건너는데, 1천여 리를 가면 대마국(對馬國)에 도착한다."
대방에서 해안을 따라 가면 한(韓) 즉 삼한의 조선이 있다는 것이며, 이 지역에서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때로는 동쪽으로 더 내려가면 구야한국에 도착한다는 것이다. 대방에서 구야한국까지가 7천리라 했다. 그런데 대방에서 구야한국까지는 해안을 따라 7천리를 가면 도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구야한국에서 왜의 대마국에 이르는 데는 처음으로 바다를 건너 1천리를 간다 했다.
이 기록을 믿는다면, 그리고 7천리를 2800km, 1천리를 400km라 할 때, 상기 지도의 대방의 위치와 한반도, 대마도와의 거리도 맞지 않는다. 그러나 필자가 추정하는 지중해에서는 거리가 일치한다. 필자는 구야한국이 북아프리카에 있다고 추정했으며, 대마국은 카르타고에서 400km떨어진 Malta섬이 아닌가 한다.
상기 삼국지 위지 동이전의 왜편에는 이외에도 많은 섬나라가 언급되며 멀리 떨어져 있다 기록되어 있다. 지중해의 오른쪽으로 나가면서 있는 섬들을 말함이 아닌가 한다. 왜인도 상투를 하였다고 하며, 문신을 하였다고 한다. sea peoples의 하나이면서 스키타인의 일부이기도 한 것 아닌가 한다. 이들도 동이족의 일원으로 사서는 소개한다. 환단고기에서도 이들을 동이족의 일원으로 단군조선의 일원으로 취급한다. 동아시아에서 굳이 말한다면 현재 일본이 아니라, 필리핀 등 폴리네시아의 섬들을 말함이 더 합리적인 추리일 것이다.
중국의 삼국시대 위나라의 시대는 AD 220-265년 시기이다. 따라서 이 시기의 한(韓)은 고구려 백제 신라를 가리킬 것으로 추정된다. 한의 위치와 관련하여서는 기자조선의 위만에게 밀려난 후 피신한 기준이야기, 그리고 고구려 유리왕 시기 남쪽으로 피신한 협보의 이야기가 있다. 남마한의 일부지역이라 추정된다. 이러한 모든 사서 내용은 현재의 한반도 사관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필자의 아래 글을 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상기 왜의 위치와 관련하여 구야한국의 위치가 매우 중요한 키가 되는 것을 본다. 한반도 사가들은 김해지방의 가야의 하나 나라라 하는데, 필자는 구야한국에 대해 아래의 심층적인 연구를 하였다. 개와 관련 이름인 구야한국은 키메리언의 일부가 아닌가 하는 필자의 아래 연구를 보면 구야한국의 위치 그리고 삼한의 위치에 대한 필자의 추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추정하의 왜와 대방과 낙랑의 위치는 현 한반도 사관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