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스칸디나비아, 스웨덴의 Skane county에 있는 Goth 족의 고향에 대해서 알아 보았다. 그리고 그들의 Goth이름이 조상들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는 위키피디아 자료를 보고 필자는 고씨의 선조들, 예를 들어 북부여의 고두막한, 고구려의 고주몽 등을 언급한 바 있다.
그런데 이 Goth이름과 같은 의미로, Geat, Gotar 등등이 언급된다고 했다. (아래 자료 참조)
Jordaneswrites inGeticathat the ancestor of the Goths was named Gapt (Proto-Germanic: *Gaut).[15][8]InScandinavia, Gaut was considered to be a manifestation of the Germanic godOdin,[29]and the Geats derived their ethnonym from this name.The Geats and royalLombardsandAnglo-Saxonsclaimed descent from Gaut.[30]Wolfram notes that the Gothic name may thus mean "sons of Gaut".[21]
Geats, 롬바르드 왕족, 그리고 앵글로삭슨이 Gaut의 후손이라 주장한단다. 그리고 고트족 이름은 Gaut의 아들들이라는 의미일 수 있다 한다.
롬바르디왕족은 필자는 진흥왕세력이라 했는데, 이들이 흉노족의 후손이라 주장되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흉노의 고향인 약수가 이곳 스칸디나비아에 있다면 고트족이 바로 흉노족이 되기 때문이다.
Regardless of the meaning of the Gothic name,Herwig Wolframwrites that it is certain that "the tribal name Goths means the same as Gauts". According to Wolfram, this is of bigger importance than its actual meaning.[21]Elias Wessénwrites thatit is impossible to separate the words Gutar, Götar, Goths, *Gutans and Gauti from each other; they all mean the same.[31][3..........
Gutar, Gotar, Goths, Gutans, Gauti 모두 같은 것이라 한다.
In his workGeography, the 2nd-century geographerPtolemymentions the Gutones/Gythones as one of the peoples ofSarmatia.[52][53][54]He also mentions theGutae/Gautae/Goutaiof southernScandia.[55][12][54]The latter are variants of the name of the Geats and closely related to the name of the Goths.[12]
Gutones, Gythones, Gutae, Gautae, Goutai 모두 Goths와 관련된 이름이라 한다. Ptolemy는 Sarmatia 사람들의 일부인 Gutones, Gythones도 Goths족 일원이라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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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ameGothswas sometimes applied also to several non-Gothic peoples, includingBurgundians,Vandals,Gepids,Rugii,Sciriand even the non-GermanicAlans.Despite the scarce attestation of their languages, these peoples, with the exception of the Alans, are often referred to asEast Germanic peoples. Herwig Wolfram has instead proposed that all these peoples still be referred to as Gothic peoples.[64]
Goths족 이름은 때로는 다른 비 고트족 부족에게도 적용되는데,부르군디언, 반달, 게피드, 루지, 스키리, 알란족 등이 포함된다.
필자는 이들이 훈족인 광개토태왕의 서진에 동참한 부족들로 판단한다.
From the late 4th century, the region ofDaciain theBalkanscame to be referred to asGothia, as this region had fallen under the control of Goths.[2]
4세기부터, 발칸의 다키아지역이 Gothia로 언급되는데, 이 지역은 Goths족의 지배하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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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6th century,ProcopiusandJordanesmention theGautoiandGauthigothsof Scandia. These were probably Geats.[15][2]Jordanes also writes that the area settled by the Goths under kingBerigwas still calledGothiscandza.[66]This name means "Gothic-Scandia" or "Gothic coast".[2]
6세기에 Procopius와 Jordanes가 언급한 Scandia의 Gautoi, Gauthigoths들도 아마도 Geats일 것이다. Jordanes는 Berig왕의 고트족이 정착한 지역이 아직도 Gothiscandza라 불리는데, 이 이름은 고트족의 스칸디아 또는 고트족의 해안을 의미한다.
In the 8th century, the area ofSeptimaniain theCarolingian Empirewas known asGotia. This area had earlier been under the control ofVisigoths.
8세기에, 카롤링거 제국의 Septimania지역은 Gotia로 알려졌는데, 이 지역은 일찍부터 서고트족의 지배하에 있었다.
From the 8th to 10th century, a people called theGothogreeksare mentioned as living in the western coast ofAsia Minor.
8세기에서 10세기까지, Gothogreeks라 불리는 부족이 소아시아 서안에 살았던 것으로 말해진다.
(source: Name of the Goth, Wikipedia, 인용출처 :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lainfs), 카테고리, Sweden)
Origin of Gotaland in Sweden (source : Wikipedia)
필자는 위의 인용 글 중에서 특히 아래 귀절을 최근 다시 주목하게 되었다.
"In his workGeography, the 2nd-century geographerPtolemymentions the Gutones/Gythones as one of the peoples ofSarmatia.[52][53][54]He also mentions theGutae/Gautae/Goutaiof southernScandia.[55][12][54]The latter are variants of the name of the Geats and closely related to the name of the Goths.[12] "
2세기의 지리학자 프톨레미는 Gutae, Gautae, Goutai 등 남부 Scania의 이름도 모두 Goths와 관련된 이름이라 한다. 필자가 여기서 특히 주목을 하는 이름은 Gutae, Goutai이다. 글자 그대로 발음하면 '구태'이다.
2. 구태, 우태, 위구태와 부여
우리는 백제의 건국그룹인 소서노, 비류, 온조 등을 언급할 때, 비류와 온조는 고구려 고주몽의 친아들이 아니고, 소서노가 고주몽을 만나기전에 결혼한 구태, 또는 우태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라는 주장을 중국 사서, 북사와 수서가 말한다 들었다. (아래 자료 참조)
수서와 북사에서는 구태가 동명의 후손이라 했으며, 대방의 옛땅에 나라를 세웠다 했다. 반면, 김부식은 구태와 비류, 온조의 관계를 알 수 없다고 했다. 국내 일부 학자는 구태와 우태가 동일인이며, 소서노의 전 남편이라 주장한다.
"구태왕은 백제의 시조이다. 중국의 사서 북사(北史)와 수서(隋書)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동명의 후손에 구태(仇台)라는 이가 있었는데 매우 어질고 신실했으며, 처음으로 대방(帶方)의 옛 땅에 나라를 세웠다. 한의 요동태수 공손도가 자기 딸을 그의 처로 삼아주었다. 그 뒤 마침내 동이 가운데 강국이 되었다
구태에 대해서 삼국사기의 편찬자 김부식은 구태와 비류, 온조 형제가 어떤 관계인지 알 수 없다고 하였고, ...........
한편, 비류백제설을 주장한 재야사학자 김성호는 구태가 백제 온조왕의 어머니인 소서노의 전 남편 우태라고 주장한다. 이 역시 소서노의 전 남편인 우태와 구태의 발음이 비슷한 것에 착안한 주장이다."
그런데, 부여의 왕의 이름이 위구태라 하는 아래 자료는 또 다른 해석을 가능케 한다. 즉 우태와 구태, 위구태 모두 연관된 것이 아닌가 한다. 120년, 122년, 2세기 후엽에 등장하는 위구태 이름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이름이라기 보다 왕이나 태자 관련 직위와 관련된 것이라 본다. 2세기 후엽 부여왕이 요동의 군벌 공손탁의 조카딸과 결혼한 것을 보면, 상기 구태가 공손도의 딸과 결혼했다는 것을 고려할 때, 부여는 지속적으로 요동지역 세력 공손씨와 연합한 것을 말해 준다.
"위구태왕(尉仇台王, 생몰년 미상)은 부여의 왕으로 이름은 위구태(尉仇台)이다.백제 건국 시조로 전하는 구태(仇台)와 동일한 행보를 보이고, 음운적으로 비슷한 우태(優台)와 관련성이 있을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1]
위구태의 선대는 알 수 없으며, 생몰년 또한 알 수 없다. 120년에 부여왕의 태자가 후한에 사신으로 왔는데, 이 태자의 이름이 위구태이다. 위구태는 후한 안제로부터 인수(印綬)와 금태(金綵)를 받고 돌아갔다. 122년에는 고구려·마한·예맥의 군사가 현도군에 쳐들어 오자, 부여에서 위구태를 보내 구원하도록 하였다. 이 이후로 오랫동안 위구태는 기록에 나타나지 않으며, 167년에 부여왕의 이름이 부태(夫台)였던 것으로 보아 원래 왕위 계승권에 가까웠으나 모종의 이유로 즉위가 늦춰진 것으로 보인다. 위구태는 구태와 닮았기 때문에 닮았다는 의미인 위(慰, 位와 통하는 것으로 봄)를 붙여 이름을 위구태라 지은 후손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2]
2세기 후엽에 즉위한다. 후한 말기 요동의 군벌 공손탁이 선비 및 고구려 등의 이민족과 대립하자 부여는 공손탁의 세력과 유대하였다. 공손탁은 부여의 왕 위구태에게 종녀(宗女 : 조카딸)을 시집보내 혼인 동맹을 맺었다. 이후 위구태가 죽자 아들 간위거가 뒤를 이었다.[3]
즉 구태는 Gutae라는 Goth족 지역인물이란 의미가 아닐까 한다. 환단고기의 마한세가, 번한세가에서 보듯이 지역이름을 딴 단군이름이 있는 것을 고려하면, Goth(Gutae, Goutai)지역의 출신으로 이름을 Gutae(구태)라 한 왕이었는지도 모른다.
둘째는 소서노와 백제의 깊은 연관성 때문이다. 소서노는 홀본부여의 연타발의 딸이라 했다. 즉 홀본 부여 사람이다. 그러나 소서노는 홀본부여의 고주몽을 떠나, 아들 온조 비류와 함께 남하하여 백제를 세우는데 기여하였다. 온조는 대방지역으로 가서 백제의 전신인 십제라는 나라를 세웠으며, 비류는 더욱 이동하여 비류국을 세웠다. 그런데 비류가 세운 비류국을 필자는 발칸반도로 추정했다. (아래 자료 참조). 즉 Gutae지역인 북유럽에서 남으로 내려와 백제를 세운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구태는 Gutae와 연관 될 수 있다.
백제는 왕들이 재위에 오르면 동명성왕에게 제사를 지내고, 부여씨를 왕씨 성으로 하였다. 즉 고구려 보다 더 부여를 계승한 것을 나타내고 있다. 이는 상기 자료에서 보았듯이, 동명성왕의 후손인 구태의 후손이라는 것(중국 사서 북사, 수서 자료), 그리고 우태가 부여왕 해부루의 서손으로 동명성왕의 먼 친척이라는 것을 고려할 때, 더 이해가 간다. 필자는 동명성왕의 북부여를 북유럽으로 추정했다.(아래 자료 참조) 따라서 구태와 Gutae는 연관된다고 본다.
이상의 연유로 인하여 구태와 Gutae가 연관된다 추정한다. 부여의 위구태는 왕이나 태자 등이 가질 수 있는 관직으로 보이는데, 로마사의 Augustus라는 직을 말하지 않나 생각된다. Augustus라는 직위는 옥타비아누스가 처음으로 가진 직함이다. 이후 로마사에서 직함으로 불려졌다. 이에 대해서는 또 하나의 연구가 되어야 하므로 다음으로 미루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