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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와 옥저는 동아시아에 없었다.

죽엽 단상

by 죽엽 2024. 10. 9.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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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약수가 동아시아에 없었다는 글을 썼다. (아래 글 참조)

이는 또한  약수의 위에 있는 부여와 읍루가 동아시아에 없었다는 말이 된다. 

 

https://paulcgpark.tistory.com/85

 

단군이 흉노의 시조 삭정을 봉한 약수지역은 동아시아에 없었다

단군 시기에 가륵단군이 BC 2177년 행실이 좋지 않은 요동태수 색정을 약수에 유배하였다. 그리고 나중에 용서하시고 그 땅에 제후로 봉하니 이가 곧 흉노의 시조가 되었다 한다. 따라서 약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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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오늘은 부여 외에도, 부여 남쪽에 있는 옥저가 동아시아에 없었다는 글을 쓰고자 한다.  이는 상기의 위치 관련 이야기가 아닌 다른 자료로 말이다.  먼저 삼국지 위서 동이전의 동옥저에 대한 자료를 살펴 보자.

 

 

아래 자료에서는 동옥저에 관한 지리적 위치 정보를 말하고 있다. 즉 동옥저는 고구려 개마대산의 동쪽에 있으며, (동쪽이) 큰 바닷가에 접해 있다.  북쪽은 읍루, 부여와 남쪽은 예맥과 접해 있다 한다. 먼저 이 정보에 대해 검토해 보자.

 

 

1. 동옥저는 고구려 개마대산의 동쪽에 있으며, 큰 바닷가에 접해 산다.

   북쪽은 읍루 부여와 남쪽은 예맥과 접하여 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三國志 魏書 東夷傳)

◇ 동옥저東沃沮

동옥저는 고구려 개마대산의 동쪽에 있는데, 큰 바닷가에 접해 산다.

- 그 지형은 동북간은 좁고, 서남간은 길어서 천리 정도나 된다.

북쪽은 읍루·부여와, 남쪽은 예맥과 접하여 있다.

호수는 5천호인데, 대군왕은 없으며 읍락에는 각각 대를 잇는 우두머리(장수)가 있다.

그들의 말은 [고]구려와 대체로 같지만 경우에 따라 좀 다른 부분도 있다.

[출처] 삼국지 위서동이전(三國志 魏書 東夷傳) : 동옥저東沃沮|작성자 sololife

 

 

한국 사학자들의 부여, 옥저 위치 추정도

 

한국의 사학자들은 상기 지도의 위치를 주장하고 있다. 개마대산을 개마고원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옥저의 위에는 읍루 부여가 있다고 했다. 약수가 읍루 부여 남쪽에 있고, 약수는 동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했다. 그리고 그 약수의 동쪽에는  단군조선이 있다 했다. 그런데 동해 오른쪽에 단군조선이 있다는 셈이 된다. 일본열도가 단군조선의 땅이 되는 어처구니 없는 결과가 된다.  (상기 필자 글 참조) 즉 상기 지도의 위치 선정은 틀렸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약수의 위치와 부여 읍루, 단군조선의  위치와 부합하는 지역은 스칸디나비아반도라 추정했다. (아래 글 참조). 유라시아 지역에서 이러한 위치에 맞는 다른 지역은 찾기가 어렵다 판단한다. 그리고 이러한 결론에 부합하는 여러 주위 역사를 필자는 찾았다. 

약수(弱水)는 북유럽에 있었다 (tistory.com)

 

약수(弱水)는 북유럽에 있었다

I. 머리말 지난 번 글에서 약수가 아시아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지리적 요건을 근거로 추정했다. 이번 글에서는 그러면 실제 약수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해 실질적으로 접근해 보고자 한다.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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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고구려의 개마대산은 동유럽의 카르파티언 산맥에 있다고 추정했다. (아래글 참조)

 

고구려 대무신왕이 정벌한 개마국은 동유럽에 있었다 (tistory.com)

 

고구려 대무신왕이 정벌한 개마국은 동유럽에 있었다

부제 : 고구려의 개마대산은 Carpathian mountains에 있다. 개마국(蓋馬國)은 백두산 10개국 중의 하나이다. 개마고원, 개마대산 등 관련 언어가 많다. 아래 자료에서 보는 것처럼, 개마고원은 개마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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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동옥저는 위만조선의 영역이었다.

   한무제시 옥저성을 현도군으로 삼았으나 이후 철폐되었다. 

 

아래 자료는 동옥저가 위만조선의 영역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위만조선이 망하고 한사군이 설치될 당시 처음에는 현도군이 되었다가 이후 독립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현도군은 고구려의 서북쪽으로 옮겼다 한다, 

 

 ▷ 한나라 초에 연의 망명객 위만이 조선의 왕이 되면서 옥저의 [읍락들은]

 모두 [조선에] 복속케 되었다.

▷ 기원전 109년 : 한 무제 원봉 2년에 조선을 정벌하여 [위]만의 손자 우거를 죽이고,

그 지역을 분할하여 사군을 설치하였는데, 옥저성으로 현도군을 삼았다.

- 뒤에 이夷·맥貊의 침략을 받아 군을 [고]구려의 서북쪽으로 옮기니

지금의 이른바 현도의 고부故府라는 곳이 바로 그곳이다.

[출처] 삼국지 위서동이전(三國志 魏書 東夷傳) : 동옥저東沃沮|작성자 sololife

 
 
 

상기 자료는 위만조선의 영역이 동옥저의 바다끝까지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사군의 위치도 이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한국사가들의 주장에 의하면 한사군이 한반도 북부지역을 다 차지했다는 것이 된다. 위만은 패수를 건너 동쪽의 조선에 왔다 했다. 한국의 학자들은 패수를 어디로 추정하는지 궁금하다. 패수는 고구려 사신에 의하면 서북으로 흘러 바다에 들어 간다 했다. 이 지역에서는 서북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 가는 강은 러시아 북쪽에서 북극해로 들어 가는 강밖에 없다. 이 지역까지 중국과 조선의 땅이었다고 우길 수는 없을 것이다. 즉 패수가 있는 지역은 이 지역이 아니라는 것이다. 필자는 패수를 라인강으로 추정했다. (아래 글 참조)

 

한(漢)나라와 조선의 경계인 패수는 독일의 라인강인가? (tistory.com)

 

한(漢)나라와 조선의 경계인 패수는 독일의 라인강인가?

제목 : 한(漢)나라와 조선의 경계가 되는 패수(浿水)는 독일의 라인강(Rhine River)인가? 우리는 패수에 대해 여러 기록이 있음을 안다. 그 중에서도 한나라와 조선 (위만조선)과 관련된 기록을 살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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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위만조선이 프랑스 론강(요수)의 우측에서  발칸반도까지 차지한 것이 아닌가  한다. 동옥저 지역은 발칸반도 우측 흑해에  접한 지역으로 판단한다. 

 

 

3. 옥저는 단단대령의 동쪽에 있다. 

 

아래 자료는 옥저가 다시 낙랑에 속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나라와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단단대령의 동쪽에 있는 지역을 나누어 동부도위를 설치하고 영동7현을 통치했는데, 옥저도 이 현 중의 하나가 되었다는 것이다. 

 

- 옥저는 다시 낙랑에 속하게 되었다.

한나라는 그 지역이 넓고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단단대령의 동쪽에 있는 지역을 나누어 동부도위를 설치하고

부내성에 치소를 두어 별도로 영동7현을 통치하게 하였다.

이 때에 옥저의 [읍락도] 모두 현이 되었다.

[출처] 삼국지 위서동이전(三國志 魏書 東夷傳) : 동옥저東沃沮|작성자 sololife

 

 

상기 자료에서는 단단대령의 위치가 중요하다. 한반도설을 주장하는 분들은 단단대령을 어디로 추정하는지 궁금하다. 단단대령의 서쪽에는 낙랑(옮긴  낙랑군)이 있다 했고,  단단대령의  동쪽에   동옥저가 있다 했다. 필자는 상기 개마국 위치를 추정한 필자의 글에서 단단대령은 지금의 크로아티아지역의 Dinaric Alps로 추정했다. 

 

 

Diaric Apls topo at Adria Coast (Source: Dinaric Apls, Wikipedia)

 

4. 동옥저는 산을 등지고 바다를 향해 있으며, 토질이 비옥하여 농사짓기 적합하다.

   그들은 창을 잘 다루며, 보전을 잘한다. 

 

 

아래 자료는 동옥저는 산을 등지고 바다를 향해 있다고 했으며, 토질이 비옥하여 농사짓기에 적합한 땅이라 했다. 그들은 창을 잘 다루며, 보전을 잘한다 했다. 

 

▷ 동옥저의 토질은 비옥하며,

산을 등지고 바다를 향해 있어 오곡이 잘 자라며 농사짓기에 적합하다.

- 사람들의 성질은 질박하고 정직하며 굳세고 용감하다.

소나 말이 적고, 창을 잘 다루며 보전步戰을 잘한다.

음식·주거·의복·예절은 [고]구려와 흡사하다.

[출처] 삼국지 위서동이전(三國志 魏書 東夷傳) : 동옥저東沃沮|작성자 sololife

 

 

필자는 한반도 주장 사학자들이  동예와 동옥저의 창을 잘 다루며, 보전에 능한 이들의 고고학적 유물을 찾았는지 궁금하다.  필자는 이미  동예와 동옥저의 위치 추정하며, 보전에 능한 이들이 발칸반도의 트라키언이라 추정했다. (아래 글 참조)

https://lostcorea.tistory.com/1538

 

동예가 있는 창해는 어디인가 (2)?

창해는 푸를 창(蒼) 또는 큰 바다 창 (滄)자를 쓴다. 한무제 당시에 예군 남려가 항복하여 세운 창해군은 푸를 창(蒼)자를 썼다. 반면 조조가 갈석산에 올라 창해를 바라보고 시를 읊었다는 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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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ustration of 5th–4th century BC Thracian peltast. (source : Thracians, Wikipedia)

 

 

5. 북옥저는 읍루와 바다나 강으로 접해 있어 읍루의 노략질이 심했다.

   겨울에는 읍루와 북옥저 사이에 있는 바다나 강이 언다. 

 

옥저는 북옥저가 남옥저와 8백여리 떨어져 있고, 읍루와 접해 있다. 북옥저는 읍루와 강이나 바다로 접해 있어, 읍루의 노략질이 있었고, 겨울에 뱃길이 얼어 읍루가 노략질하기 어려을 때 북옥저 사람들은 산에서 내려와 촌락에 산다 했다.  즉 겨울에 강이나 바다가 언다는 것이다. 읍루는북쪽 바다로 흐르는 강을 따라 남으로  북옥저로 내려 왔을 수도 있다. 

 

- 북옥저는 일명 치구루라고도 하는데 남옥저와는 8백여리 떨어져 있다.

그들의 풍속은 남·북이 서로 같으며, 읍루와 접해 있다.

읍루는 배를 타고 다니며 노략질하기를 좋아하므로 북옥저는 그들을 두려워하여

여름철에는 언제나 깊은 산골짜기의 바위굴에서 살면서 수비하고,

겨울철에 얼음이 얼어 뱃길이 통하지 않아야 산에서 내려와 촌락에서 산다.

[출처] 삼국지 위서동이전(三國志 魏書 東夷傳) : 동옥저東沃沮|작성자 sololife

 

 

필자는 읍루를 부여와 같이 약수 북쪽에 있는 자료에 근거하여 스칸디나비아 반도로 추정했다. 읍루가 배를 타고 다니며 노략질 하기를 좋아하는 위 기록은 발트해 지역에서 활동하는 바이킹족이 떠오른다. 이들은 발트해, 북해, 그리고 동북유럽 강들의 수로를 이용하여 활발한 활동을 했다. (아래  글   참조).   따라서 이들의 선조들이 발트해에서 강을 따라 내려와 발칸반도 북쪽지역에 있는 북옥저에 다달을 수 있다고 본다. 이들 지역의 강들은 겨울에 추워 강들이 언다. 한반도  북쪽의 중공의 동북3성지역에서는 강이 남북으로 흐르지 않고 동서로 흐른다. 

 

바이킹은 한민족과 관련이 있는가? (tistory.com)

 

바이킹은 한민족과 관련이 있는가?

I. 서론 필자는 최근 돌궐의 위치 연구에 여념이 없다. 돌궐의 위치가 기존의 사학계에서 주장하는 Gokturk가 아니라 프랑스 북부 지역에 있다는 확신에 근거한 것이다. 그 확신은 거란의 별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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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동옥저 동쪽 바다 멀리 여인국이 있다. 

 

아래 자료는 동옥저가 동쪽 끝이 바다에 접해 있다는 것이고, 그 바다 멀리 여인국이 있다는 것이다. 

 

▷ 왕기가 별도로 군대를 파견하여 궁宮을 추격, 동쪽 경계의 끝까지 갔다.

- 그곳에 사는 노인에게, “바다의 동쪽에 또 사람이 살고 있는가?”하고 물었다.

노인은 대답하기를,

“우리 나라 사람이 어느날 배를 타고 고기잡이를 하다가 풍랑을 만나

수십일을 바람부는 대로 표류, 동쪽으로 흘러가서 한 섬에 도착 하였다.

그 섬 위에는 사람이 살고 있었으나 말을 서로 알아 들을 수 없었다.

그들의 습속은 해마다 7월달이면 어린 여자를 구하여 바다에 집어넣는다.”라 하였다.

이어 말하기를,

바다 가운데에 어떤 나라가 있는데 그 곳에는 순전히 여자만 있고 남자는 없다.”고 하였다.

[출처] 삼국지 위서동이전(三國志 魏書 東夷傳) : 동옥저東沃沮|작성자 sololife

 

 

1) 동양 사서에서의 여인국 자료

 

여인국에 대한 자료는 일단 성호사설에 나와 있는 직방외기의 기록을 먼저 보자. (아래 자료 참조)  즉 달단의 서쪽에 여인국이 있다 했다. 달단은 타타르를 말한다. 즉 타타르의 서쪽에 있다 했으며, 이 자료는 이조 후기의 자료라는 점을 감안하자. 

 

"성호사설1권 천지문

 

여국(女國)

 

옛날부터 서쪽에 여국(女國)이 있다고 한다. 《직방외기(職方外紀)》에 보면, 다만 “달단(韃靼)의 서쪽에 옛날의 여국이 있었다. 그 나라 풍속에는 봄철에 남자 한 사람만이 그곳에 오는 것을 허용하였고 아들을 낳으면 죽여 버렸는데 지금은 다른 나라에 병합하고 그 명칭만 남아 있다.”고 하였으니 이 말이 가장 근사하다."

[출처] 여국|작성자 샛님

 

달단은 어디인가? 달단은 타타르이며, 협의의 타타르는 서부 러시아지역이다. (아래 자료 및 필자의 글 참조). 따라서 이들의 서쪽에 있는 여인국은 흑해위지역이 된다. 여기에는 Sauromatian의 여인국이 있었다. 

 

"오늘날 러시아카잔, 타타르스탄, 아스트라한을 중심으로 거주하는 타타르인은 '볼가-우랄 타타르인' 혹은 '볼가 타타르인'으로 불린다. 이들은 불가르 칸국의 주민족이었던 볼가 불가르인의 후손에 가깝다." (자료 : 타타르, 나무위키)

 

 

https://lostcorea.tistory.com/1585

 

고구려 장수왕이 유연과 함께 도모한 지두우는 어디인가?(수정본)

그동안 필자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3국의 역사의 무대가 유럽과 페르시아에 걸쳐 있었다고 주장해 왔다. 이번에는 유연과 함께 지두우를 도모한 고구려 장수왕 시기의 역사를 통해 다시 한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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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더 거슬러 올라가 당나라 시기의 여인국 자료를 보자.

대당서역기에서는 서여국에 대해 언급했다 한다. (여국, 나무위키 자료) 서여국은 불름국 (동로마제국)과 교류했다 한다.  반면 서해에 있는 서여국이란 언급도 있다. (여국, 위키백과 자료)

 

또한 동여국도 있다 한다. 수사, 북사, 구당서, 신당서에 언급되었다 한다. 티베트지역을 언급하고, 여인국이라기 보다, 여존남비 사회를 말하고 있다. (여국, 나무위키 자료)

 

2) 동양사 자료속의 여인국 위치로 본 동옥저의 위치 검토

 

필자는 서해가 없는 현 중공땅을 고려해 보면, 그리고 동여국을 말하는 것을 보면, 사서의 자료가 현 중공지역을 중국의 위치로 보는 것 같지는 않다. 필자는 역사적 중국의 위치를 요수인 론강의 서쪽 현재 프랑스 지역으로 본다.

 

그런 면에서 동여국은 동쪽의 여인국으로서, 동이쪽에 있는 여인국일 것이다. 위키피디아 자료의 흑해위의 아마조네스, Sauromatian 위치와 일치한다.

 

서여국은 중국의 서쪽에 있는 여인국으로서, 서해가 언급되는 점을 고려하면, 대서양에 있는 여인국일 가능성이 높다. Britain이 가능한 지역으로서 언급되기도 한다. 토욕혼, 즉 티베트지역을 포루투갈지역으로 추정하는 필자는 이 지역일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바스크지역도 여성이 지배하는 관습이 있는 것을 보면, 대서양에 접한 바스크지역일 가능성도 있다. 

 

이제 동옥저의 바다 건너 있다는 여인국에 대해 가늠해 보자.  현재 한국의 사학자들이 주장하는 동옥저, 부여의 위치는 아래 지도와 같다. 아래 환단고기 진서론을 주장하는 일부 사학자들이 추정하는 지도와 사뭇 다른다. 

한국 사학자들의 부여, 옥저 위치 추정도

 

환단고기 진서론을 주장하는 일부 사가들의 약수 추정위치 지도

 

상기 지도를 감안하면, 옥저의 동쪽 바다에 있는 여인국은 일본이나 사할린 등에 있어야 한다. 물론 이는 직방외기의 달단의 서쪽에 있는 여인국의 위치가 될 수 없다. 서해 운운하는 대당서역기의 서인국도 될 수 없다. 티베트에 있다 하는 동여국도 될 수 없다.  즉 중국 사서에서 언급하는 어느 위치의 여인국과도 위치가 일치하지 않는다. 그리고 필자는 현 일본열도 또는 사할린 등의 위치에서 여인국에 대한 자료를 본 적이 없다. 한마디로 옥저의 상기 위치는 중국사서 내용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필자는 상기 위 지도의 위치 추정이 틀렸다 판단한다. 위 지도는 부여, 읍루의 남쪽에 있다는 약수의 위치를 추정하면 금방 틀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여, 읍루의 남쪽에 있는 약수는 동으로 뻗어 바다에 들어 간다 했다. 그리고 그 우측에 고조선이 있어 단군이 서쪽에 있는 약수로 사람을 보내 금철과 고유를 채취했다 한다. 상기 지도에서 동으로 흘러 바다로 간다는 약수를 꼽는다면, 태평양으로 흘러가는 아무르강 등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르강이 바다에 접하는 태평양에는 고조선이 있을 땅이 없다. 바다만 있을 뿐이다. 따라서 동아시아에서는 약수의 위치를 찾을 수 없다.

환단고기 진서론을 주장하는 일부 사학자들의 약수 추정 지도인 두번째 지도도 틀린 것은 마찬가지라 본다. 약수는 동으로 흘러 바다로 간다고 했는데, 상기 약수 위치는 바다와 거리가 멀다. 바이칼호를 바다로 주장하려 하는 모양이지만, 상기 지도에서 호수와 바다를 구분하지 못하는 당시의 사람들은 아니라고 본다. 

 

따라서 부여, 읍루, 동옥저 동예 모두 동아시아에 있을 수 없다. 

 

유라시아에서 약수의 위치에 맞는 유일한 지역은 북유럽의 스칸디나비아지역이다. (필자의 아래 글 참조)

 

 

https://lostcorea.tistory.com/1813

 

약수(弱水)는 북유럽에 있었다

I. 머리말 지난 번 글에서 약수가 아시아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지리적 요건을 근거로 추정했다. 이번 글에서는 그러면 실제 약수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해 실질적으로 접근해 보고자 한다.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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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서양사 자료의 여인국 위치에 대비한 동옥저의 위치 추정

 

그럼 이제 서양사에서의 여인국 자료에 대비하여 동옥저의 위치에 대해 검토해 보자.  서양사에서 여인국 즉 아마존에 대한 역사적 언급은 기원전 시기로 올라 간다. 

 

그리스 신화에서, 아마존은 일리아드, 아르고노티카, 헤라클레스의 노동 등의 전설이나 서사시에서 묘사된다. 그들은 여성 전사나 사냥군으로서, 신체적인 민첩성, 힘이나 화살쏘기, 말타기 기술, 그리고 전투기술 등에 있어  남성과 같이 기술있고 용감하다. 그 사회는 남자에게  폐쇄되어 있으며,  그들은  오직 딸들만  키우며, 아들들은 그들의 아버지들에게 보내졌다. 그들은 아기를 낳기 위해 잠시 남자들과 어울릴뿐이다.  (아래 자료 참조)

 

"In Greek mythology, the Amazons (Ancient Greek: Ἀμαζόνες Amazónes, singular Ἀμαζών Amazōn, via Latin Amāzon, -ŏnis) are portrayed in a number of ancient epic poems and legends, such as the Labours of Heracles, the Argonautica and the Iliad. They were a group of female warriors and hunters, who were as skilled and courageous as men in physical agility, strength, archery, riding skills, and the arts of combat. Their society was closed to men and they only raised their daughters and returned their sons to their fathers, with whom they would only socialize briefly in order to reproduce.[1][2]

(source : Amazons, Wikipedia, 인용출처 :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lainfos), 카테고리, 여인국/장인국)

 

용감하고 매우 독립적인 아마존은 여왕에 의해 다스려지며, 정기적으로  스키타이부터 트라키아, 소아시아, 에게해 섬들, 아라비아와 이집트까지 군사적 원정을 했다.  군사적 약탈외에도, 아마존은 신전의 건설과 많은 고대 도시들(Ephesos, Cyme, Smyrna, Sinope, Myrina, Magnesia, Pygela 등)의 설립과 관계가 있다. (아래 자료 참조)

 

"Courageous and fiercely independent, the Amazons, commanded by their queen, regularly undertook extensive military expeditions into the far corners of the world, from Scythia to Thrace, Asia Minor and the Aegean Islands, reaching as far as Arabia and Egypt.[3] Besides military raids, the Amazons are also associated with the foundation of temples and the establishment of numerous ancient cities like Ephesos, Cyme, Smyrna, Sinope, Myrina, Magnesia, Pygela, etc.[4][5]"

(source : Amazons, Wikipedia, 인용출처 :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lainfos), 카테고리, 여인국/장인국)

 

 

Macedonia and the Aegean world BC 200 (source : Wikipedia)

 

Sinop의 위치 지도 (자료 : 위키피디아)

 

이러한 전설의 내용으로 아마존의 홈랜드를 추정할 수 있다. 소아시아 지방(Lycia, Caria 등)으로부터 흑해 주위의 초원지방, 또는 심지어 리비아(Libyan Amazon)까지 다양한 주장이 있다. 그러나 가장 많이 언급되는 지역은 흑해의 남부해안에 있는 북아나톨리아의 Pontus지역이다. 여기에는 독립적인 아마존왕국이 있고 Thermodon 강둑에 Themiscyra라는 수도에 아마존 여왕이 살았다 한다. (아래 자료 참조)

 

"The texts of the original myths envisioned the homeland of the Amazons at the periphery of the then-known world. Various claims to the exact place ranged from provinces in Asia Minor (Lycia, Caria, etc.) to the steppes around the Black Sea, or even Libya(Libyan Amazon). However, authors most frequently referred to Pontus in northern Anatolia, on the southern shores of the Black Sea, as the independent Amazon kingdom where the Amazon queen resided at her capital Themiscyra, on the banks of the Thermodon river.[6]"

(source : Amazons, Wikipedia, 인용출처 :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lainfos), 카테고리, 여인국/장인국)

 

 

 

Themiscyra(Terme) in Samsun province (source : Wikipedia)

 

역사가 헤로도투스(기원전 5세기)와 바킬리드 시인(기원전 6세기)는 아마존의 고향을 흑해 남쪽해안의 Pontus로 언급하였고, 수도는 Thermodon강(현재의 Terme강) 둑에 있는 Themiscyra라 했다. 헤로도투스는 어떻게 아마존이 궁극적으로 스키타이에 살게 되었는지 설명한다. Thermodon 강에서 아마존을 패배시킨 후 돌아가는 그리스 함대는 3척의 아마존 포로가 가득한 배가 있었다. 바다로 나아가자 아마존 포로들은 선원들을 죽이고 어떻게 도망하여 스키타이 해안에 안전하게 도달하게 되었다. 그들은 충분한 말을 확보하자마자, 카스피해와  흑해 사이의 초원에 정착했다. 헤로도투스에 의하면 이들은 결국 스키타인과 동화되었으며, 그들의 후손이 소로마태(Sauromatae)인데, 이들은 사르마티언(Sarmatians)의 바로 이전 선조이다. (아래 자료 참조)

 

"In Scythia[edit]

An amazon fighter statue in Terme, Turkey

 

The Poet Bacchylides (6th century BC) and the historian Herodotus (5th century BC) located the Amazon homeland in Pontus at the southern shores of the Black Sea, and the capital Themiscyra at the banks of the Thermodon (modern Terme river), by the modern city of Terme. Herodotus also explains how it came to be that some Amazons would eventually be living in Scythia. A Greek fleet, sailing home upon defeating the Amazons in battle at the Thermodon river, included three ships crowded with Amazon prisoners. Once out at sea, the Amazon prisoners overwhelmed and killed the small crews of the prisoner ships and, despite not having even basic navigation skills, managed to escape and safely disembark at the Scythian shore. As soon as the Amazons had caught enough horses, they easily asserted themselves in the steppe in between the Caspian Sea and the Black Sea and, according to Herodotus, would eventually assimilate with the Scythians, whose descendants were the Sauromatae, the predecessors of the Sarmatians.[36][2] "

(source : Amazons, Wikipedia, 인용출처 :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lainfos), 카테고리, 여인국/장인국)

 

Map of Sarmatae in Roman Empire (AD 125) (source : Wikipedia)

 

 

 

Map of Roman Empire in AD 125 (source : Wikipedia)

 

 

 

스트라보(기원전 1세기)는 Thermodon강 옆의 초원에서 아마존의 고향을 방문하고 확인한다. 그러나 세월이 많이 지나 그 시대에는 다시는 볼 수 없었는데, 아마존은 이미 산으로 물러났다. 그러나 스트라보는 다른 사람들, Metrodorus of Scepsis나 Hypsicrates가 아마존은 Themiscyra를 버린 후, Gargareans의 경계넘어 정착하기를 선택했다고 주장했다고 추가적으로 언급한다. Gargareans은 모두 남자들로만 이루어진 부족으로 코카서스 산맥의 북쪽 언덕에 살았다. 

아마존과 Gargareans은 여러 세대를 거쳐 일년에 봄에 두달동안 아이들을 가지기 위해  비밀리에 만나왔다. 이러한 만남은 오랜 부족의 관습에 따라 이루어졌고 제물을 단체로 드리기도 했다. 모든 여아들은 아마존에 의해 거두어졌고, 남아들은 Gargareans에 돌려주었다. 기원전 5세기의 Magnes 시인은 아마존에 대항하여 기병전투에서 용감한 리디언(Lydians)을 노래했다. (아래 자료 참조)

 

"Amazon homeland[edit]

Strabo (1st century BC) visits and confirms the original homeland of the Amazons on the plains by the Thermodon river. However, long gone and not seen again during his lifetime, the Amazons had allegedly retreated into the mountains. Strabo, however, added that other authors, among them Metrodorus of Scepsis and Hypsicrates claim that after abandoning Themiscyra, the Amazons had chosen to resettle beyond the borders of the Gargareans, an all-male tribe native to the northern foothills of the Caucasian Mountains.

The Amazons and Gargareans had for many generations met in secrecy once a year during two months in spring, in order to produce children. These encounters would take place in accordance with ancient tribal customs and collective offers of sacrifices. All females were retained by the Amazons themselves, and males were returned to the Gargareans.[37] 5th century BC poet Magnes sings of the bravery of the Lydians in a cavalry-battle against the Amazons.[38][39][40]"

 (source : Amazons, Wikipedia, 인용출처 :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lainfos), 카테고리, 여인국/장인국)

 

 

 

Map of Gargareans area  (North Caucasus) (source : Wikipedia)

 

이상에서 살펴 본 아마존의 활동 지역은 소아시아의 서쪽 해안지역과 아나톨리아 북쪽 해안에서 있었던 것으로 기록을 통해 확인된다. 그후 코카서스 북쪽지역으로 옮겨 가 스키타이와 동화되었다 한다. 이들의 후손이 Sauromatians이고 이들의 바로 후손이 Sarmatians이 된다고 한다. 따라서 동옥저의 동쪽 바다에 있던 여인국은 흑해나 에게해의 동쪽에 있는 지역으로 추정되는데, 기원후 3세기의 시기를 감안하면 흑해 동쪽지역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즉 이 지역이 동여국이 있던 장소가 아닐까 한다. 

 

 

4)서여국은 아틀란티스에 있었나?

 

동옥저와 직접적 관련은 없지만, 서여국에 대해 알아 보고자 한다. 결국 서해에 있는 서여국을 찾으면 중국의 역사적 위치에 대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아래 자료는 아마존이 트로이전쟁(BC 1250년 이전)에서 등장하는 이야기가 기록된다. 그리고 Lycia지역 (아나톨리아 남부 해안) 어디에 있었다는 식의 기록이 나온다. 그리스 역사에서 아마존에 대한 언급은 매우 흔하다는 것을 말한다. 스키타이와 연관된 아마존이라면, 트로이전쟁이 스키타이와 연관된 것일 수 있다고 판단한다. 여기서는 이것이 본 글의 주제가 아닌 만큼, 이에 관한 연구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자 한다.  

"Early records refer to two events in which Amazons appeared prior to the Trojan War (before 1250 BC). Within the epic context, Bellerophon, Greek hero, and grandfather of the brothers and Trojan War veterans Glaukos and Sarpedon, faced Amazons during his stay in Lycia, when King Iobates sent Bellerophon to fight the Amazons, hoping they would kill him, yet Bellerophon slew them all. The youthful King Priam of Troy fought on the side of the Phrygians, who were attacked by Amazons at the Sangarios River.[31]

 

Amazons in the Trojan War[edit]

There are Amazon characters in Homer's Trojan War epic poem, the Iliad, one of the oldest surviving texts in Europe (around 8th century BC). The now lost epic Aethiopis (probably by Arctinus of Miletus, 6th century BC), like the Iliad and several other epics, is one of the works that in combination form the Trojan War Epic Cycle. In one of the few references to the text, an Amazon force under queen Penthesilea, who was of Thracian birth, came to join the ranks of the Trojans after Hector's death and initially put the Greeks under serious pressure. Only after the greatest effort and the help of the reinvigorated hero Achilles, the Greeks eventually triumphed. Penthesilea died fighting the mighty Achilles in single combat.[32] Homer himself deemed the Amazon myths to be common knowledge all over Greece, which suggests that they had already been known for some time before him. He was also convinced that the Amazons lived not at its fringes, but somewhere in or around Lycia in Asia Minor - a place well within the Greek world.[citation needed]

Troy is mentioned in the Iliad as the place of Myrine's death.[33][34] Later identified as an Amazon queen, according to Diodorus (1st century BC), the Amazons under her rule invaded the territories of the Atlantians, defeated the army of the Atlantian city of Cerne, and razed the city to the ground.[35][17]

 (source : Amazons, Wikipedia, 인용출처 :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lainfos), 카테고리, 여인국/장인국)

 

단지 상기 글 말미에서, 기원전 1세기의 Diodorus에 의하면, 아마존이 아틀란티언 영토를 침범했다는 언급이 나온다. 아틀란티스 지역은 논란이 많이 있지만, 플라톤 등의 이야기에 의하면 아래 지도와 같이 대서양의 한 섬으로 추정된다. 필자는 앞에서 서해가 언급되는 서여국, 그리고 서해가 대서양일 수 있다는 추정을 하였다. 여기서 언급되는 아틀란티언을 공격한 아마존이 서여국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아마존이 스키타인과 연결된다는 위의 공부 내용을 고려한다면, 스키타이가 남프랑스까지 진출했다는 헬펜교수의 기록을 고려한다면, 충분한 가능성을 보여 준다 할 수 있다.  즉 고대 중국의 서쪽에 있다는 또는 서해에 있다는 여국은 대서양에 있는 아마존을 언급한 것일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이 서여국일 것으로 추정된다. 즉 서해에 있는 서여국의 존재는 고대 중국의 위치를 암시한다고 본다. 

 

Athanasius Kircher's map of Atlantis, placing it in the middle of the Atlantic Ocean, from Mundus Subterraneus 1669, published in Amsterdam. The map is oriented with south at the top.

 

7. Sarmatians은 누구인가?

 

필자는 위에서 아마존이 스키타인과 동화하여 Sauromatians이 되었고 이들의 후손이 Sarmatians이라고 알았다. 필자는 이들 Sarmatians이 결국 스키타인의 후손으로 스키타인의 뒤를 이은 세력이 아닌가 한다. 

필자는 우랄지역의 Sarmatians이 기원전 2세기경 이 지역에 진출했는데,  고조선의 뒤를 이은 북부여지역이 아닌가 추정했다. (아래 글 참조)

 

https://lainfos.tistory.com/494

 

북부여는 볼가 우랄지역을 포함했나?

최근 스키타인에 대한 연구에서 스키타이제국의 말기라 흔히 말하는 시기에 Sarmatians에 의해 스키타인제국이 흡수되는 것으로 서양사는 말한다. 이 당시 Sarmatians은 볼가 우랄지역에 있었다. 이

lainfos.tistory.com

 

 

그런데 이번에 Sarmatians에 대해 자료를 다시 보면서 이들이 아래와 같이 변발한 모습의 사진을 보게 되었다. 이 모습은 기원전 3-2세기의 무덤에 나온 자료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필자는 환단고기에서 편발과 푸른 옷을 입는다는 단군조선의 이야기를 보았다. 편발은 여성의 머리를 따서 댕기머리 하는 것으로,  처녀는 한가닥으로 기혼녀는 두가닥으로 땋는다는 것을 말한다. 변발은 만주족이 한다지만, 남자의 경우 편발대신 변발을 말하는 것으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말한다. 따라서 이러한 특수한 머리 형태는 그 지역의 특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판단된다. 청나라가 변발을 강요했다 하는데, 청나라 시기는 기원후 16세기의 이야기이다. 즉 이러한 사진은 이 지역이 다시 한번 고조선의 일부라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Early Sarmatian chieftain BC 3-2c BC (source : Wikipedia)

 

 

 

8. 마무리말

 

이상으로 동옥저와 부여에 관한 위치 추정을 마치고자 한다. 동옥저, 부여가 동아시아에 없다는 것을 이미 위에서 충분히 설명한 것으로 판단된다. 여인국에 대한 연구는 동옥저의 위치를 다시 한번 확인 시켜준 자료가 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이들과 스키타인의 후손인 Sauromatians, Sarmatians에 대한 연구는 변발을 하는 남자의 모습을 아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필자가 추정하는, 그동안의 여러 글을 통한 고조선의 영역 추정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해주어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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