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역사 유튜브를 보다가 삼백강 원장의 주장을 듣게 되었다. (아래 유튜브 자료 참조) 쿠릴타이 TV님의 유튜브인데, 삼백강원장님의 주장을 소개하고 있었다.
필자는 나름대로 중국사의 허점을 주장하는 삼백강 원장님의 연구를 주목한다. 특히 그분이 언급했다는 중국사의 면적은 그리 크지 않았다는 주장을 하셨다는 말을 매우 의미있게 받아 들인다. 그러면서 왜 그러한 주장을 하셨는지 배경이 되는 자료가 궁금하다. 그러나 아직 접해지 못해 아쉽다. 쿠릴타이님은 이러한 자료를 소개해 주셨으면 한다.
상기 유튜브 자료에서는 사고전서와 시문헌을 통해 요수의 위치를 북경 서쪽에 있었다고 삼백강 원장이 주장하였다고 소개 한다. 그러면서 산해경을 통해서도 조선이 대륙에 있었음을 밝혔다 한다. (상기 화면 참조) 그 주장의 원문이 궁금하기도 하다.
그러나 필자가 아는 요수 즉 압록수에 대한 자료와는 일치하지 않는다. 요수 즉 압록수는 남으로 바다로 흘러 간다 했다. 즉 요수의 하구는 바다에 접해야 하며, 요수의 방향이 결국 남쪽으로 흐른다는 것이다. 중공의 어느 지역에도 남으로 흘러 바다로 가는 강이 없다. 즉 요수는 중공 대륙의 땅에 없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그리고 압록수, 요수는 중국에서 황하, 장강의 다음 가는 3번째 긴 강이라 했다. 중공사학자들은 지금의 황허강, 양자강, 란찬강(메콩강)이 3대 강이라 주장한다. 양자강을 장강이라 주장하고 란찬강 즉 메콩강을 압록수 즉 요수라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의 이러한 주장은 그들의 역사 주장과 일치하지 않는다. 요수의 서쪽이 요서이고, 요수의 동쪽이 요동이다. 자고로 중국사에서 요서에 중국의 한족의 나라들이 있었고, 요동에는 동이의 여러 나라가 있었다. 지금의 메콩강을 요수로 한다면, 그들의 역사는 중공땅이 아닌 동남아시아의 서쪽지역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요동의 동이는 베트남 위치에 지나지 않으며, 더 동쪽에는 바다가 되므로, 이 또한 역사의 위치와 맞지 않는다. 서양사학자들은 양쯔강을 장강이라 주장하는 중공사학자들의 주장을 받아 들이지 않는다.
란찬강(메콩강)의 지도 (자료 :골라듄다큐 유튜브)
요수의 하구에는 압록곡의 험한 산세로 인하여, 바다 가까이 있는 좁은 지역이 동서로 연결되고 있었다. 그래서 고구려 미천왕이 서안평을 점령하자, 낙랑군과 대방군은 중국과 교류하지 못하고 313년 결국 고구려에 망하고 만다. 즉 이러한 지형이 요수 남쪽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요수, 즉 압록수의 동쪽에는 발해시기에 압록부가 있었다. 즉 파란 색의 강인 압록수 뿐만 아니라, 그 동쪽 지역에도 파란색의 지형이 있어 압록부가 있었던 것이다. 이런 지형을 찾아야 한다. 중공의 어디에도 없고, 한반도에도 없다.
또한 압록수는 그 지형지세가 험하여, 당태종이 고구려를 공격할 때, 고구려가 왜 그 이점을 살리지 못하느냐는 당나라 장수의 고구려에 대한 충고 겸 말 실수에 노해 그 장수를 면직시켰다. 즉 압록수는 매우 험한 지형지세를 지나는 강인 것이다. 중공의 요하가 그런가 한반도의 압록강이 그런가? 그 둘 모두 아니다.
또한 압록수 즉 요수의 동쪽에는 천리에 걸쳐 뻗어 있는 백두산, 장백산, 태백산이 있다고 발해고 지리고는 말하고 있다. 백두산, 장백산, 태백산 모두 같은 산을 가리킨다 하였다. 북경의 서쪽에 이러한 지형이 있는가? 한반도에 이러한 지형이 있는가? 중공의 요하 근처에 이러한 지형이 있는가? 모두가 없다.
요수는 요동과 요서를 가르는 중요한 지역의 강이다. 그리고 패수는 서북쪽으로 흘러 바다에 들어 간다 했다. 패수는 요수와 가까이 있다. 위만이 패수를 건너 동쪽으로 조선에 달했다 했다. 서북쪽으로 흘러 바다로 가는 강이 중공지역에 있는가? 한반도에 있는가? 없다.
즉 중공의 지역이 조선의 역사가 있는 일부지역은 될 수 있어도, 요수가 있는 지역은 아니라는 것이다. 필자는 이 모든 지형 조건을 갖춘 요수로서 프랑스의 론(Rhone river)강을 추정한다. 백두산은 알프스산맥의 몽블랑산이라 추정한다.
중공의 역사는 95%가 거짓이라고 어느 중국학자는 말한다고 한다. 어느 서양선교사는 조선의 땅이 독일에까지 이르렀다고 했다 한다. 훈민정음을 만든 세종때 요동땅에 보내 음운학 자료를 수집하였다는 말을 보면, 이조시대에도 요수 가까이 있었다. 우리는 역사를 연구할 때 보다 정직해야 한다. 자신의 역사전공을 역사를 왜곡하는 수단의 라이선스로 착각해서는 안된다. 한국 사학계의 각성과 분발을 촉구한다.